나눔으로 만들어가는 행복한 세상, 생명나눔재단
폐지 줍는 노인 위한 마을기업 선다
회현동에서 혼자 사는 김 모(72) 할아버지는 4년 전부터 매일 봉황동, 서상동, 부원동 일대에서 폐지를 줍고 있다. 오전 5시부터 오후 2~3시까지 폐지를 모아 고물상에 팔면 하루에 약 4천~5천 원, 한 달에 15만 원 남짓을 번다. 김 씨는 "식료품과 기본적인 생필품을 구입하기에도 빠듯한 돈"이라고 하소연했다.
지난해 겨울까지 폐지를 주워 생활을 이어가던 최 모(78·봉황동) 할머니는 요즘 꼼짝 못하고 방안에 누워 있다. 오른쪽 무릎에 관절염이 생겼는데도 폐지를 줍다가 최근 무릎에 물이 차기 시작한 것이다. 보건소에서 받은 약을 복용하고 있지만 병원비가 없어 제대로 된 치료도 받지 못하고 있다. 사회복지사 김 모(43·여) 씨는 "할머니가 폐지와 빈 병을 집 앞마당에 모아 놓았기에 대신 팔았더니 2천 원도 채 안됐다. 그간 할머니의 고충이 느껴져 가슴이 아팠다"고 말했다.
▲ 지난 11일 오전 부원동 새벽시장에서 한 할머니가 폐지를 주워 모은 뒤 고물상에 갖다 팔기 위해 도로를 건너고 있다.
전국적으로 사정은 비슷하겠지만 김해에는 폐지를 주워 생계를 이어가는 어르신들이 많다. 전국적으로 그 숫자가 170여만 명에 이르고, 김해에서도 수천 명의 어르신들이 폐지를 줍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폐지 줍는 어르신들의 생계 대책을 마련하기보다는 교통사고를 예방한다며 형광조끼를 지원하는 사업을 하는 게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첫손님 가게'를 통해 지역사회에 기부문화를 확산시켜나가고 있는 ㈔생명나눔재단(이사장 안진공)이 폐지를 주워 생계를 이어가는 어르신들을 위한 마을공동체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 특정 지역에 마을기업을 만들어 어르신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경제적 도움과 심리적 안정을 주자는 게 사업의 취지다. 생명나눔재단은 사업의 첫 번째 목표로 마을기업인 '회현마을공동체 회현당'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7월께 회현동주민센터 인근에 회현당을 건립할 예정이다.
생명나눔재단 임철진 사무총장은 "회현동은 한 때 수많은 상가와 전통시장이 김해의 상권을 선도했던 곳이다. 하지만 도시 팽창으로 주거환경이 나빠지면서 김해의 원도심 중에서도 가장 슬럼화된 지역이 됐다. 특히 노령인구가 많아 폐지 줍는 어르신들이 집중되어 있는 마을이기 때문에 이곳에서 마을공동체 첫 번째 사업을 시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회현당은 폐지를 주워 생계를 이어가는 어르신들과 회현마을의 주민들이 함께 운영하는 마을기업이다. 회현당에서 어르신들이 할 수 있는 대표적인 일은 지역민들에게 판매할 참기름, 들기름, 들깨가루 등을 만드는 것이다. 생명나눔재단은 국내산 참깨와 들깨 등을 생산하는 농가와 연계해 원재료를 시중보다 저렴하게 구입하기로 했다.
회현당에서 생산할 참기름의 이름은 '회현마을 외할머니 참기름'으로 정했다. 임 총장은 "어르신들이 회현당에서 일을 하면 월 20만 원 이상의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이 가운데 10만 원은 마을화폐로 지급해 마을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그는 "참기름 등을 생산하는 것은 시민들에게 안전한 먹을거리를 제공하겠다는 취지에서다. 지역의 어르신들이 생산하는 양질의 식품을 지역민들이 구입하게 함으로써 지역민들 간의 신뢰 회복과 공동체 의식 함양에도 이바지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생명나눔재단은 회현마을 주변의 식자재 가게와 식당 등이 하고 있는 채소 다듬기, 제품 포장하기 등의 소일거리를 회현당에서 맡아 할 수 있도록 추진할 계획도 세웠다. 또 어르신들이 힘을 모아 아침, 점심 식사를 준비한 뒤 함께 무료로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어르신들을 위한 다양한 여가 프로그램도 개발해나갈 방침이다.
임 총장은 "폐지를 줍는 어르신들을 위한 사회안전망을 구축하고 이들의 경제적 궁핍을 해소하는 것이 마을공동체 사업의 가장 큰 목적이다. 회현당 건립을 계기로 저소득층 어르신들이 밀집해 있는 김해지역 곳곳에 마을기업이 들어설 수 있도록 점차 사업을 확대해 지역공동체 의식을 높이는 데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생명나눔재단은 회현당 건립을 위한 후원자를 모집하고 있다. 현재 100여 명의 후원자가 모였다. 3만 원 이상을 후원하면 누구든지 후원자가 될 수 있다. 후원 문의/생명나눔재단(전화 055-335-9955).
김해뉴스 /김명규 km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