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여든인 그녀의 아침은 주름진 얼굴에 분을 바르면서 시작된다. 출근을 준비하는 모습이다. 입사 5개월차 신입사원인 그녀는 요즘 회춘한 것처럼 매일 힘이 솟는다.
불과 6개월 전만 해도 그녀의 아침은 암담하고 고독했다. 거리에 내놓은 폐지를 누가 먼저 채 갈까봐 눈을 뜨자마자 옷을 막 껴입고 집 밖으로 나갔다. 당시 그녀는 폐지를 주워 생계를 이어갔다. 자신의 노후가 이런 모습일 것이라곤 상상치 못했다. 아내이자 엄마로 평생을 노력하며 살았기에 소박하지만 행복한 황혼을 꿈꿨다. 그러나 어쩔 도리가 없었다. 남편은 떠났고, 제 자식 먹여 살린다고 등골이 휘는 자녀들에게 손을 벌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당장 반찬값이라도 벌어야 했지만 일할 곳은 없었다. 노구를 이끌고 거리에서 종이를 줍는 일은 몸도 마음도 피폐하게 만들었다.
그런 그녀에게 새로운 삶을 만들어 준 것은 동네 사람들이었다. 535명의 지역 주민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마을기업 ‘회현당’을 만들고, 그녀와 제2의, 제3의 그녀들을 채용했다. 그녀들은 모두 폐지를 줍던 차상위계층 동네 할머니들이었다. 같은 동네 고등학생들이 커피 만드는 법을 가르치고, 참기름 명장이 직접 참기름 제조법을 전수했다. 회현당 건물 주인도 연 4개월씩 무상으로 상가를 빌려주고, 이웃들은 매일 따뜻한 밥을 무료로 제공한다. 사업을 이끈 생명나눔재단 식구들은 매일 그녀들 곁에 머물면서 일을 돕는다.
6개월이 지났고, 이제 그녀들은 직접 커피를 내리고 참깨를 볶아 ‘외할머니 참기름’을 만든다. 하루 2시간에 월급 20만원, 친구 같은 동료들과 점심도 문화수업도 같이할 수 있다. 게다가 커피와 참기름을 판 수익금으로 그녀와 비슷한 처지의 노인을 도울 수도 있다. ‘오늘은 또 어떤 손님들이 찾아올까.’ 출근길, 붉은 립스틱이 곱게 발린 그녀의 입꼬리가 자꾸 올라간다.
여든넷의 바리스타 ‘마음만은 김태희’
맛은 몰라도 정성만큼은 한가득
얼굴에 핀 웃음꽃 “이런 게 행복”
‘마음만은 김태희’ 할머니에게 스마트폰으로 배우 김태희를 보여주자 똑같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회현당 문을 열고 들어서면 가장 먼저 웃음으로 맞아주는 이가 있다. 회현당의 바리스타인 닉네임 ‘마음만은 김태희’ 할머니(84)다.
그녀는 커피 맛을 잘 모른다. 이렇게 쓴 커피를 누가 좋아할까 싶다. 그래도 손님들이 좋아하며 찾아주니 매일 정성을 다해 커피를 내린다. 커피값은 1000원, 주문 후 손님이 돈을 돈통에 넣으면 커피를 만들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커피 만드는 게 무섭고 어려워서 혼이 났어요. 겨우 따라 만들기는 하는데 맛이 있는지 잘 몰라요. 내가 그 맛을 잘 모르니깐.(웃음)”
할머니가 커피를 만든 지는 6개월쯤 됐다. 그 전에는 물론 폐지를 주우며 생활했다. 남편은 27년 전 사별했고, 자식들은 결혼 후 제 살기에 바빴다. 60대에는 건축현장에서 소일거리를 하며 돈을 벌었는데 그것도 70이 넘자 받아주지 않았다.
“폐지 줍고 다닐 때 많이 힘들었어요. 사람은 많은데 종이는 없고, 하루종일 주워도 돈도 얼마 안줘요. 그래도 그거라도 해야 했어요. 일할 곳이 없었으니까요.”
그러던 어느 날 새생명나눔재단 직원의 권유로 이곳에서 일하게 됐다. 고령에 새로운 일을 배운다는 것이 겁 나고 어렵기도 했지만, 이제는 새 일이 고맙고 즐겁다.
“일이 너무 재미있어요. 이분들(설립자) 모두 너무 고마워요. 나이 많은 사람에게 이렇게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 줘서요.”
참기름 공장의 ‘파랑새 아가씨’
“남편 돌보랴 일하랴 바쁘지만
깨가 쏟아지게 즐거운 첫 직장”
‘파랑새 아가씨’ 할머니가 직접 짠 참기름 완제품을 들어보이고 있다.
닉네임 ‘파랑새 아가씨’ 할머니(79)는 회현당이 생애 첫 직장이다.
남편 뒷바라지와 아이 키우는 데만 집중했던, 소위 전업주부였던 그녀가 일이 필요해진 건 일흔이 넘어서다.
“남편이 알츠하이머를 앓게 되면서 돈이 필요하더라고요. 아이들에게 용돈을 받는데 약값까지 달라 할 수는 없으니까 뭐라도 해야겠다 싶었죠. 아픈 남편을 두고 나가기가 어려워서 집 근처에 놓인 종이박스를 근처 고물상에 팔기 시작했죠.”
남들처럼 하루 종일 폐지를 줍고 다닐 수 없는 형편이었기에 폐지로는 제대로 돈벌이가 안됐다. 그러다 회현당을 알게 됐다. “뉴스를 보는데, 아는 얼굴(같은 팀 ‘오드리 될 뻔’ 할머니)이 여기서 일하고 있더라고요. 나 같은 할머니들이 와서 일하는 곳이라기에 신청해서 두 달 만에 합격했지요.(웃음)”
참기름 공장에서 일하는 할머니는 오전에만 나와서 일을 한다. 맡은 일이 끝나면 집으로 달려가 남편 식사를 챙겨주고, 다시 돌아와 동료들과 점심을 먹고 집으로 가는 식이다. “이런 일자리가 없지요. 우리 동네니까 일하다가 남편 챙기러 집에 잠깐 들러 볼 수도 있고, 옛날부터 알던 동네 친구들이 같이 일하니 재미도 있고요.”
게다가 좋은 재료로 좋은 참기름을 만든다는 자부심도 느껴진다고 했다. “전남 해남의 참깨를 가져와 얼마나 깨끗하게 만든다고요. 많이들 사가서 일하는 친구들이 더 많아지면 좋겠지요.”
‘회현당 마당쇠’ 임철진씨
기획부터 설립, 운영까지 총괄
“더 많은 마을공동체 생겼으면”
생명나눔재단 임철진 사무총장.
생명나눔재단 임철진 사무총장은 회현당 기획부터 설립, 운영까지 모든 일을 총괄했다. 할머니들은 그런 그를 ‘회현당의 잔소리꾼’이라고 했다.
임 총장은 “사회적으로 폐지 줍는 할머니들이 만드는 음식에 대해 부정적 인식이 있어요. 그래서 일부러 따라 다니면서 청결이나 작업에 신경을 많이 쓰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자꾸 이야기하니까 어르신들이 잔소리 좀 그만하라고 투덜대시죠”라며 웃었다.
임 총장이 회현당을 기획한 것은 폐지 줍는 어르신들의 안전망 확보를 위해서다. “마을공동체 사업과 동네에서 폐지를 줍는 어르신들 문제를 함께 풀어보려다 이런 마을기업을 생각하게 됐습니다. 이분들이 노동력이 있으니 맞춤형 일자리만 마련하면 금전적인 문제와 건강, 그리고 안정감을 함께 찾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생명나눔재단(이하 재단) 조사 결과 김해시에서 폐지를 줍는 노인은 1000명에 달했다. 재단은 노인들이 집중돼 있는 회현동에 마을기업을 설립하기로 하고, 설립자를 모집했다. 535명의 주민 설립자들이 6000만원을, 재단에서 ‘첫 손님 가게’ 기부금 3000만원을 보태 지난 8월 2일 회현당 문을 열었다.
“참기름을 잘 만들기 위해 1년 동안 전국에 잘한다는 참기름 가게 50곳을 찾아다녔어요. 위험요소가 없는 저온 착유 참기름을 만들고 싶은데 배울 곳이 잘 없더라고요. 그러다 명인 한 분을 찾았는데 안가르쳐 주셔서 이메일을 70통이나 보내서 겨우 배웠어요.” 그 덕분에 150℃ 저온으로 착유한 건강식 ‘외할머니 참기름’이 탄생했고, 임 총장은 자타공인 ‘참기름 박사’가 됐다. 유해요소중점관리 우수식품인증인 HACCP(햇썹)도 진행 중이다.
“사업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것 같아요. 수익금도 가게를 유지하고도 남을 정도가 됐고, 어르신들도 심리적 안정을 되찾으신 것 같고요. 이분들이 성공적으로 안착을 해서 또 다른 분들에게 기술을 전하는 역할을 해야죠.”
그렇게 6개월, 회현당의 공장장이자 마당쇠 역할을 해 온 그는 이제 회현당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회현당 운영을 ‘회현마을 공동체 마을기업 준비위원회’에 일임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재단은 회현당의 인큐베이팅 과정까지만 개입할 계획입니다. 마을 주민들에게 운영을 넘겨 회현당을 통해 회현마을의 공동체를 더 탄탄하게 하고, 더 많은 어르신들이 더 안정적으로 일하실 수 있도록 생산량을 높일 수 있도록 해야죠. 다른 지역에도 이와 비슷한 마을공동체를 설립해 나갈 계획입니다.”